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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원리 서론(2): 메시아를 위한 기대

하나님은 타락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메시아를 보내시는 섭리를 해오셨다. 타락인간이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떻한 조건을 세워야만 하는가?

 

 

2. 메시아를 위한 기대

메시아는 인류의 참부모로 오셔야 한다. 그가 인류의 참부모로 오셔야 하는 이유는, 타락한 부모로부터 태어난 인류를 거듭나게 하여 그 원죄를 속해 주셔야 하기 때문이다(전편 제7장 제4절 Ⅰ.1). 그러므로 타락인간이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완성한 터 위에서 메시아를 맞아 원죄를 벗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그러면 타락인간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려면 어떠한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는가? 이것을 알기 위하여는, 원래 아담이 어떠한 경로에 의하여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던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탕감조건은 본연의 위치와 상태를 상실하게된 것과 반대의 경로에 의하여 세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담이 창조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서는 두 가지의 조건을 갖추어야 했던 것이다. 첫째는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는 것이었는데, 물론 아담이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는 인물이 되어야 했었고, 그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기 위한 조건으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담은 이 믿음의 조건을 세우는 것으로서 그의 책임분담을 수행하기 위한 성장기간을 거쳐야만 했었다. 그런데 이 성장기간은 수로써 된 것이므로 결국 이 기간은 수를 완성하는 기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아담이 창조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세워야 했던 두번째의 조건은 그가 ‘실체기대’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그의 성장기간을 다 거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세웠더라면, 그는 그 기대 위에서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실체기대’를 조성함으로써 창조본성을 완성한 말씀의 완성실체가 되었을 것이다(요한복음 1장 14절 아담이 이와같은 완성실체가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하나님의 제1축복이었던 개성완성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위와같은 경로에 의하여서 창조목적을 완성하였을 것이므로, 타락인간도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는 그 경로에 의하여 아래와 같이 ‘믿음의 기대’를 세운 터전 위에서 ‘실체기대’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1) 믿음의 기대

아담은 하나님이 말씀을 믿지 않고 타락하였기 때문에 ‘믿음의 기대’를 세우지 못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는 말씀의 완성실체가 되지못하여 창조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인간이 창조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기준을 복귀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인간조상이 세우지 못하였던 그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리고 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첫째는 그를 위한 ‘중심인물’이 있어야 한다. 아담이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인물이 되지못하고 타락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할 수 있는 중심인물을 찾아 나오셨다. 타락한 아담가정에서 가인과 아벨로 하여금 제물을 바치게 하셨던 것도 이러한 중심인물을 찾아 세우기 위함이었고, 노아, 아브라함, 이상, 야곱, 모세, 그리고 열왕들과 세례요한 등을 부르셨던 것도 그들을 이러한 중심인물로 세우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둘째는 그것을 위한 ‘조건물‘을 세워야 한다. 아담은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한 조건으로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함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되어 타락된 인간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대신하는 조건물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타락된 인간은 만물보다 거짓된 입장에 떨어지게 되었기 때문에(예레미야 17장 9절), 구약 이전시대에 있어서 제물 또는 그 제물을 대신한 방주 등의 만물을 조건물로 세워 가지고 ‘믿음의 기대’를 세우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대’는 인간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침범을 당한 만물을 복귀하는 기대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있어서는 율법의 말씀, 또는 그 말씀을 대신한 법궤나 성전이나 중심인물 등이 이 기대를 조성하기 위한 조건물이었다. 또 신약시대에 있어서는 복음의 말씀, 따라서 그 말씀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이 ‘믿음의 기대’ 조성을 위한 조건물이었던 것이다.

인간이 타락된 후에 있어서의 이와같은 조건물은, 인간편에서 보면 그것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편에서 볼 때에는 어디까지나 소유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셋째는 그를 위하여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세워야 한다. 그러면 이 섭리적인 수에 의한 탕감기간이 왜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떠한 섭리적인 수의 탕감기간을 세워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편의상 후편 제3장 제2절 Ⅳ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2) 실체기대

타락인간이 창조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한 터전 위에서, 일찍이 인간조상이 이루지 못하였던 ‘완성실체’를 이루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러나 타락인간은 어디까지나 메시아를 통하여 원죄를 벗지 않고서는, ‘완성실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타락인간은 위에서 말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한 터전 위에서, ‘실체기대’를 세움으로써 이루어지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 위에서야 비로소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것이다. 타락인간은 이와 같이 메시아를 맞아 원죄를 벗어 가지고, 인간조상의 타락 전 입장으로 복귀된 후에,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하고 메시아와 일체가 되어, 인간조상이 타락됨으로써 걷지 못하고 남아졌던 성장기간을 다 지나서야 ‘완성실체’가 되는 것이다.

한편 ‘실체기대’를 세우는 데 있어서도 타락인간이 세워야할 어떠한 탕감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인 것이다.

인간조상은 타락하여 원죄를 지니게 됨에 따라서, 창조본성을 이루지 못하고 타락성근성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인간이 메시아를 맞아서 원죄를 벗고 창조본성을 복귀하기 위한 실체기대를 세우기 위하여는, 먼저 그 ‘타락성을 벗기위한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이 조건을 어떻게 세우는가 하는 것은 후편 제1장 제1절 Ⅱ에서 논하기로 하자.

Ⅱ. 복귀섭리노정

1. 복귀섭리노정의 시대적 단계

이제 아담이후 오늘에 이르는 전 역사노정에 있어서의 시대적 단계에 대하여 대강 살펴보기로 하자.

타락인간으로 하여금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게 하고, 그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맞게 함으로써, 창조목적을 완성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섭리는 일찍이 아담가정으로부터 시작되었었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그 섭리의 뜻은 좌절되었고, 그 후 10대를 지나 그 뜻은 다시 노아의 가정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40일의 홍수로써 악한 세대를 심판하셨던 것은, 노아가정을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세우게 하고 그 기대 위에 메시아를 보내심으로써, 복귀섭리를 완수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타락행위로 인하여, 노아가정과 방주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세웠던 10대와 40일을 사탄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들을 다시 하늘편으로 탕감복귀하는 기간 즉 400년이 지난 후에, 뜻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옮겨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아브라함이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뜻맞게 세웠더라면, 이 기대를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이루어 가지고, 그 터 위에서 메시아를 맞이하였을 것이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함으로써 그 뜻은 또다시 좌절되고 말았다. 이에 메시아를 맞기 위한 믿음의 조상을 찾아 내려왔던 아담가정으로부터의 2천년기간은, 일단 사탄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노아의 입장과 다른 것은, 비록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는 실수하였지만 이상, 야곱의 3대에 걸쳐 연장하면서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세움으로써, 이 기대를 중심하고 애급에서 하나님의 선민을 번식하여 후일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민족적으로 넓힐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면,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기간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찾아 세워, 장차 복귀섭리를 시작할 수있는 그 기대를 조성하는 기간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역사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인하여,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의 2천년기간을 사탄에게 내주었으므로, 이 기간을 다시 하늘 편으로 탕감복귀하는 기간이 있어야 할 것이니, 이 기간이 바로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의 2천년기간이다.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하지 않았다면, 그 후손들에 의하여 세워졌을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 위에 메시아가 오셨을 것이므로, 그 때에 복귀섭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믿고 모시어서, 그를 하나님 앞에 민족적인 산 제물로서 뜻맞게 세워 드렸더라면, 그 대에도 그들이 세운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 위에서, 오신 바 메시아를 중심하고 복귀섭리는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한 것과 같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함으로써, 그 민족적인 헌제에 실수하였기 때문에 아브라함 이후 예수님까지의 2천년기간은, 또다시 사탄에게 내준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탄에게 내준 이 2천년기간을 또다시 하늘 편으로 탕감복귀하는 2천년기간이 필요하게 된 것이니, 이 기간이 바로 예수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2천년기간인 것이다. 이 기간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한 복귀섭리로써, 기독교 신도들이 ‘재림주님을 위한 세계적인 기대’를 세우지 않으면 아니된다.

2. 복귀섭리노정의 시대 구분

(1) 말씀에 의한 섭리로 본 시대 구분

①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기간은, 인간이 아직 복귀섭리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한 시대였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다만 타락인간이 헌제에 의한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말씀에 의한 섭리를 하실 수 있는 다음 시대를 위한 기대를 조성한 시대였기 때문에 이 시대를 ‘말씀기대 섭리시대’라고 한다.

② 또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2천년기간은, 구약의 말씀에 의하여, 인간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소생급까지 성장한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소생 구약시대’라고 한다.

③ 한편 예수님으로부터 재림기까지의 2천년기간은, 신약의 말씀에 의하여 인간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장성급까지 성장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장성 신약시대’라고 한다.

④ 예수님 재림 이후의 복귀섭리완성시대는, 복귀섭리의 완성을 위하여 주시는 성약의 말씀에 의하여, 인간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완성급까지 성장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완성 성약시대’라고 한다.

(2) 부활섭리로 본 시대 구분

①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기간은, 인간이 헌제로써 장차 부활섭리로 하실 수 있는 구약시대를 위한 기대를 조성한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부활기대섭리시대’라고 한다.

②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2천년기간은, 부활섭리의 시대적인 혜택과 구약의 말씀에 의하여, 인간이 영형체급까지 부활하는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소생부활섭리시대’라고 한다.

③ 예수님으로부터 그의 재림기까지의 2천년기간은,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과 신약의 말씀에 의하여 인간이 생명체급까지 부활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장성부활섭리’라고 한다.

④ 예수님 재림 이후의 복귀섭리완성시대는,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과 성약의 말씀에 의하여 인간이 생령체급으로 완전 부활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완성부활섭리시대’라고 한다.

(3) 믿음의 기간을 탕감복귀하는 섭리로 본 시대 구분

① 아담으로부터 아브라까지의 2천년기간은, 사탄에게 내주었던 이 기간을, 아브라함 한 분으로 찾아 세움으로써, 하늘 것으로 탕감복귀할 수 있는 구약시대를 위한 기대를 조성한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탕감복귀섭리시대’라고 한다.

②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2천년기간은,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인하여 사탄에게 내주었던 아담으로부터의 2천년기간을, 이스라엘민족을 중심하고 다시 하늘 것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탕감복귀섭리시대’라고 한다.

③ 예수님으로부터 그의 재림기까지의 2천년기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서 사탄에게 내주었던 구약시대의 2천년기간을, 기독교 신도들을 중심하고 하늘 것으로 재탕감복귀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탕감복귀섭리연장시대’라고 한다.

④ 예수님 재림 이후의 복귀섭리완성시대는, 사탄에게 내 주었던 복귀섭리의 전 노정을 하늘 것으로 완전히 탕감복귀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탕감복귀섭리완성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4) 메시아를 위한 기대의 범위로 본 시대 구분

①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기간은, 헌제에의하여 아브라함가정 하나를 찾아 세움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조성한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섭리시대’라고 한다.

②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2천년기간은, 구약의 말씀에 의하여 이스라엘민족을 찾아 세움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하는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섭리시대’라고 한다.

③ 예수님으로부터 그의 재림기까지의 2천년 기간은, 신약의 말씀에 의하여 기독교 신도들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움르로써, ‘메시아를 위한 세계적인 기대’를 조성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메시아를 위한 세계적인 기대섭리시대’라고 한다.

④ 예수님 재림 이후의 복귀섭리완성시대는, 성약의 말씀에 의하여 천주적인 섭리를 하심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천주적인 기대’를 완성해야 할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메시아를 위한 천주적인 기대섭리완성시대’라고 한다.

(5)책임분담으로 본 시대 구분

①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기간은, 다음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책임분담섭리를 하시기 위한 기대를 조성한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책임분담기대섭리시대’라고 한다.

②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2천년기간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바 원리적인 책임을 지심으로써, 친히 사탄을 굴복시키는 제1차의 책임을 담당하시고 선지자들을 대하시어, 소생적인 복귀섭리를 해 나오신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하나님의 책임분담섭리시대’라고 한다.

③ 예수님으로부터 그의 재림기까지의 2천년기간은, 타락의 장본인인 아담과 해와의 사명을 대신 완성해야 되었던 예수님과 성신이, 사탄을 굴복시키는 제2차의 책임을 지시고 타락인간을 대하시어, 장성적인 복귀섭리를 해 나오신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예수와 성신의 책임분담섭리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④ 예수님 재림 이후의 복귀섭리완성시대는, 인간이 본래 천사까지도 주관하게 되어 있는 창조원리에 입각하여, 지상과 천상에 있는 성도들이 타락한 천사인 사탄을 굴복시키는 제3차의 책임을 지고, 복귀섭리를 완성해야 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성도의 책임분담섭리시대’라고 한다.

(6)섭리적 동시성으로 본 시대 구분

①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기간은,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는 탕감조건들을 상징적으로 세워 나온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라고 한다.

②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2천년기간은,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는 탕감조건들을 형상적으로 세워 나온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라고 한다.

③ 예수님으로부터 그의 재림기까지의 2천년기간은,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는 탕감보건을 실체적으로 세워 나온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실체적 동시성의 시대’라고 한다.

Ⅲ. 복귀섭리 역사와 ‘나’

‘나’라는 개성체는 어디까지나 복귀섭리역사의 소산이다. 따라서 ‘나’는 이 역사가 요구하는 목적을 이루어야 할 ‘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역사의 뜻 가운데서야 하며, 그러기 위하여는 복귀섭리역사가 오랜 기간을 두고 종적으로 요구하여 나오고 있는 탕감조건들을, ‘나’ 자신을 중심하고 횡적으로 찾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나’는 복귀섭리역사가 바라는 결실체로서 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까지의 역사노정에서,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하여 부름 받았던 선지선열들이 이루지 못한 시대적인 사명들을 이제 ‘나’를 중심하고 일대의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수한 개체가 되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역사적인 승리자가 되기 위하여는, 선지선열들을 대하시던 하나님의 심정과, 그들을 부르셨던 하나님의 근본 뜻, 그리고 그들에게 맡겨졌던 섭리적인 사명들이 과연 어떠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상세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타락인간은 그 자신으로서 이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귀섭리의 완성자로 오시는 재림주님을 통하여 그 모든 것들을 알고, 또 그를 믿고 모시어 그와 하나가 됨으로써, 그와 함께 복귀섭리역사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횡적으로 찾아 세운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복귀섭리의 ‘뜻’ 을 이루기 위하여 왔다 간 모든 선인들이 걸었던 길은, 오늘날의 우리들이 다시 되풀이하여서 걸어야 할 길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타락인간은 복귀섭리의 내용을 모르고서는, 결코 생명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복귀섭리를 자세히 알아야 하는 이유는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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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January 15,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