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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타락론(1): 죄의뿌리

  • 성서에 인간시조 아담과 해와가 따먹은 선악과가 과연 문자 그대로 나무의 과실일 것인가?
  • 성서의 많은 부분이 그러한 것처럼 이것도 어떠한 것에 대한 상징이나 비유일 것인가?

 

 

제2장 타락론

인간은 누구나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려는 본심의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어떠한 악의 세력에 몰리어, 본심이 원하는 선을 버리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게 된다. 이러한 악의 세력 가운데서 인류의 죄악사는 연면히 계속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이 악의 세력의 주체를 사탄이라고 한다. 인간이 이 사탄의 세력을 청산하지 못하는 것은, 사탄이 무엇이며 또 그것이 어떻게 해서 사탄이 되었는가하는, 그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악을 발본색원함으로써 인류 죄악사를 청산하고 선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는 먼저 사탄이 사탄된 동기와 경로와 그 결과를 밝히 알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타락론을 알아야 한다.

제1절 죄의 뿌리

이제까지 인간 속에 깊이 그 뿌리를 박고 쉬임없이 인간을 죄악의 길로 몰아내고 있는 죄의 뿌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기독교 신도들만이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죄의 뿌리가 된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어 왔을 뿐이다.그러나 선악과가 문자 그대로 나무의 과실이라고 믿는 신도들과, 또 성서의 많은 부분이 그러한 것처럼 이것도 그 어떠한 것에 대한 상징이나 비유일 것이라고 믿는 신도들이 서로 의견을 달리하여 제각기 구구한 해석을 하고 있을 뿐,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완전한 해명이 내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많은 기독교 신도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담과 해와가 따먹고 타락되었다는 선악과가 문자 그대로 어떠한 나무의 열매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부모 되시는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자녀들이 따먹고 타락할 수 있는 과실을 그렇게도 보기 좋고 탐스럽게 만들어서(창세기 3장 6절), 그들이 손쉽게 따먹을 수 있는 곳에 두셨을 것인가?

예수님은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태복음 15장 11절)고 말씀하셨다. 하물며 먹는 것이 어떻게 인간을 타락케 할 수 있었을 것인가? 한편 인간의 원죄는 인간의 시조로부터 유전되어 나오고 있는 것인데, 먹는 물건이 어떻게 원죄를 유전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유전은 오직 혈통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그 무엇을 먹었다고 하여 그 결과가 후손에게까지 유전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순종 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하여 선악과를 창조하시고 그것을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고 믿고 있는 신도들도 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인간에게 사망이 따르는 방법으로써 그렇게 무자비한 시험을 하셨으리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아담과 해와는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코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먹으면 죽을 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것을 따먹었다. 기아에 허덕였을 리도 없는 아담과 해와가 먹을 것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렇게 엄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어떠한 물질이 아니고 생명에 대한 애착까지도 문제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자극을 주는 다른 무엇이었음에 틀림없다. 즉 선악과가 이와 같이 물질이 아니라면 그것은 다른 무엇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성경의 많은 주요한 부분이 상징이나 비유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사실인데, 무엇 때문에 선악과만은 굳이 문자대로 믿지 않으면 안된단 말인가? 오늘날의 기독교 신도들은 모름지기 성서의 문자에만 붙들려 있었던 지난날의 고루하고도 관습적인 신앙태도를 버려야 하겠다.

선악과를 비유로 보아야 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을 비유하였을 것인가? 우리는 이것을 해명하는 방법으로서 창세기 2장 9절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함께 에덴동산에 있었다고 하는 ‘생명나무’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보기로 하자. 이 ‘생명나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그와 함께 있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무엇이라는 것도 바로 알 수 있겠기 때문이다.

1. 생명나무

성서의 말씀에 의하면, 타락인간의 소망은 ‘생명나무’앞으로 나아가 ‘생명나무’를 이루는 데 있다.잠언 13장 12절을 보면, 구약시대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도 ‘생명나무’를 소망의 대상으로 바라고 있었던 것이고,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기록을 보면, 예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기독교 신도들의 소망도 역시 ‘생명나무’에 나아가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타락 인간의 궁극적인 소망이 ‘생명나무’인 것을 보면 타락 전 아담의 소망도 ‘생명나무’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 하면 복귀과정에 있는 타락 인간은 원래 타락전 아담이 이루려다가 못 이룬 바로 그 소망을 다시 찾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24절에 아담이 범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화염검으로써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그의 길을 막아 버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사실로 보아도 타락 전 아담의 소망이 ‘생명나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로 보아도 타락 전 아담의 소망이 ‘생명나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담은 타락으로 인하여 그의 소망이었던 이 ‘생명나무’를 이루지 못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기 때문에(창세기 3장 24절), 그 ‘생명나무’는 그 후 한결같이 타락인간의 소망으로 남아져 내려왔던 것이다.

그러면 완성될 때를 바라보며 성장하고 있던 미완성한 아담에 있어서의 소망이란 무엇이었을 것인가? 그것은 그가 타락되지 않고 성장하여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 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생명나무’의 내용을 바로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은 곧 완성한 아담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생명나무’는 결국 완성한 아담을 비유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아담이 타락되지 않고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 되어서 ‘생명나무’를 이루었다면, 그의 후손들도 모두 ‘생명나무’가 되어 지상천국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그의 길을 화염검으로 막아버리고 말았다(창세기 3장 24절). 그렇기 때문에 ‘생명나무’는 창조이상을 복귀하려는 타락인간의 소망으로 남아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죄가 있는 타락인간은 그 자신의 능력으로는 창조이상을 완성한 ‘생명나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인간이 ‘생명나무’가 되기 위하여는 로마서 11장 17절에 기록된 말씀대로, 창조이상을 완성한 한 남성이 이 지상에 ‘생명나무’로 오셔 가지고 모든 인간을 그에게 접붙이어 하나되게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러한 ‘생명나무’로 오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13장 12절에 의하면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고대하였던 ‘생명나무’는 바로 초림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3장 24절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화염검으로써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아담의 길을 막았기 때문에, 이것이 걷히지 않고는 인간이 ‘생명나무’에로 나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도행전 2장 3절에 기록된 대로 오순절 날에 성도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불같은 혀 곧 화염검이 갈라진 후에야 성령이 강림하여, 전 인류가 ‘생명나무’되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그에게 접붙임을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도들은 ‘생명나무’되시는 예수님에게 영적으로만 접붙임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는 부모라 할지라도 또다시 속죄를 받아야 할 죄악의 자식을 낳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아담으로부터 유전되어 나온 원죄를 아직도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또 그 자식에게 유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전편 제4장 제1절).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지상에 ‘생명나무’로 재림하셔서, 온 인류를 다시 접붙이심으로써, 원죄까지 속죄해 주시는 섭리를 하시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말씀대로, 신약성도들이 또다시 ‘생명나무’를 고대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기록되어 있는 ‘생명나무’는 바로 재림 예수 님을 비유한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이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생명나무'(창세기 2장 9절)를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생명나무’로서 복귀하시려는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담이 타락하여 창세기 2장 9절의 첫 ‘생명나무’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타락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님은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후’생명나무’로 재림하셔야 하는 것이다. 예수 님을 후아담이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린도전서 15장 45절).

2.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하나님은 아담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배필로서 해와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동산 가운데에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을 비유하는 나무가 있었다면 그러한 여성을 비유하는 또 하나의 나무도 있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 ‘생명나무’와 같이 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창세기 2장 9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한 그 나무는 창조이상을 완성할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결국 완성한 해와를 비유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성서에서는 예수님을 포도나무(요한복음 15장 5절) 혹은 감람나무(로마서 11장 17절)로 비유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인간타락의 비밀을 암시하심에 있어서도 완성한 아담과 해와를 두 나무로 비유하셨던 것이다.

Ⅱ. 뱀의 정체

해와를 꼬여서 범죄케 한 것은 뱀이었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3장 4-5절). 그러면 또 이 뱀은 무엇을 말한 것인가? 우리는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는 그 내용에 의하여 뱀의 정체를 알아보기로 하자.

성경에 기록된 뱀은 인간과 담화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적인 인간을 타락시킨 것을 보면 그것도 영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 뱀이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것은 더욱 영물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또 요한계시록 12장 9절을 보면, 하늘에서 큰 용이 땅으로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옛 뱀이 바로 에덴동산에서 해와를 꼬인 그 뱀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 뱀이 하늘로부터 내쫓겼다고 하였으니, 하늘에 있었던 그 옛 뱀이 영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편 이 뱀을 마귀요 사탄이라고 하였는데, 이 사탄은 인간이 타락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상 인간의 마음을 악의 방향으로 이끌어 나온 것이 사실이니 그것은 영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사탄이 영물인 것이 사실이라면, 사탄으로 표시된 뱀이 영물임을 말할 것도 없다. 성서에 나타나 있는 이러한 사실로 보아, 해와를 꼬인 뱀은 동물이 아니고 어떠한 영적인 존재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처럼 뱀으로 비유한 영물이 과연 창세 전부터 있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것도 피조물 중의 하나였던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만일 이 뱀이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대립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존재라면, 피조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 악의 투쟁은 불가피한 것으로서 영속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결국 헛수고로 돌아가버리고 말 것이며, 모든 존재가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일원론은 깨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뱀으로 비유한 이 영물은, 원래 선을 목적으로 창조되었던 어떠한 존재가 타락되어 사탄이 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과 담화를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며, 또 그 소재가 하늘이었고, 한편 또 그것이 만일 타락되어 악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심령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한 존재는 과연 무엇일 것인가? 천사 이외에는 이러한 조건을 구비한 존재가 없으므로 우선 그 뱀은 천사를 비유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후서 2장 4절을 보면,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를 용서치 아니하시고 어두운 지옥에 던져두셨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 말씀은 인간을 꼬여 가지고 범죄 하였던 뱀을 곧 천사라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입증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뱀은 혀끝이 둘로 갈라져 있다. 따라서 그것은 한 혀로 두 말을 하고, 한 마음으로 이중의 생활을 하는 자의 표상이 되는 것이다. 또 뱀은 자기의 먹을 것을 몸으로 꼬아서 먹기 때문에, 이것은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을 유혹하는 자의 표상이 된다. 그러므로 성서는 인간을 꼬인 천사를 뱀으로 비유하였던 것이다.

Ⅲ. 천사의 타락과 인간의 타락

우리는 위에서 인간을 꼬여 타락케 한 뱀이 바로 천사였으며, 이 천사가 범죄 하여 타락됨으로써 사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 다음으로 우리는 천사와 인간이 어떠한 죄를 저질렀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1. 천사의 범죄

유다서 1장 6절에서 7절에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잇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천사가 간음으로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간음이란 혼자서는 행할 수 없는 범행이다. 따라서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행하여진 천사의 간음에 있어 그 대상이 되었던 존재가 무엇이었던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인간은 어떠한 죄를 저질렀던가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2. 인간의 범죄

창세기 2장 25절을 보면, 범죄하기 전 아담 해와는 몸을 가리지 않은 채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한 후에는 벗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무화과나무 잎으로 하체를 가리었다(창세기 3장 7절). 만일 선악과라고 하는 어떠한 과실이 있어서 그들이 그것을 따먹고 범죄를 하였다면, 그들은 필시 손이나 입을 가리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허물을 가리는 것이 그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손이나 입을 가리지 않고 하체를 가리었었다. 따라서 이 사실은, 그들의 하체가 허물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그들이 하체로 범죄하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욥기 31장 33절에는 내가 언제 아담처럼 내 죄악을 품에 숨겨 허물을 가리었었던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담은 타락한 후 그의 하체를 가리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곧 아담이 가리었던 그의 하체가 허물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담의 하체가 어찌하여 허물이 되었을 것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담이 하체로써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타락되기 전의 세계에 있어, 뻔히 죽을 줄 알면서 저지를 수도 있었던 행동은 무엇이었을 것인가? 그것은 사랑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식하라(창세기 1장 28절)하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사랑으로 인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두고 볼 때 사랑은 가장 귀하고 가장 거룩한 것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역사적으로 사랑의 행동을 천시하여 온 것은 그것이 바로 타락의 원인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도 또한 음란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3. 천사와 인간과의 행음

우리는 위에서 밝힌 바 인간이 천사의 꼬임에 빠져 타락되었다는 사실과, 인간이나 천사는 모두 행음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었다는 사실과 그 위에는 피조세계에 있어서 영적인 존재로서 서로 어떠한 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는 인간과 천사 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 등을 결부하여 볼 때, 인간과 천사와의 사이에 행음관계가 성립되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8장 44절에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서는 ‘마귀’는 곧 사탄이요 사탄은 곧 인간을 꼬인 옛 뱀이라고 명시하였다. 이러한 성구들로 미루어 보면, 인간은 ‘마귀’의 후손이요 따라서 사탄의 후손이기 때문에 결국 뱀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 경위로 타락한 천사 즉 사탄의 후손이 되었는가? 이것은 인간의 조상이 천사와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사탄의 혈통에서 태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혈통이 아니고 사탄의 혈통으로써 태어났기 때문에, 로마서 8장 23절에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친자식이 못되고)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 마태복음 3장 7절에는 세례요한이 유대인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 즉 사탄의 자식이라고 질책하였고, 마태복음 23장 33절에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보시고,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책망하신 기록이 있다.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중심 삼고 볼 때, 우리는 천사와 인간 사이에 행음관계가 있어서 그것이 타락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Ⅳ. 선악과

우리는 위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해와를 비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 또 선악과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해와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목이 과실에 의하여 번식되는 것과 같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그의 사랑으로써 선의 자녀를 번식해야 할 것이었는데, 사탄을 중심한 그의 사랑으로써 악의 자녀를 번식하였다. 해와는 이와 같이 그의 사랑으로써 선의 열매도 맺을 수 있고, 또한 악의 열매도 맺을 수 있었던 성장기간을 통하여서 완성되도록 창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랑을 선악과라고 하였던 것이며, 그 사람을 말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가 그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그것을 가지고 자기의 피와 살이 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선의 사랑으로 선과를 따먹고, 선의 피와 살을 받아 선의 혈통을 번식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사탄을 중심한 악의 사랑으로 악과를 따먹고, 악의 피와 살을 받아 악의 혈통을 번식하여 죄악의 사회를 이루었던 것이다. 따라서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사탄(천사)을 중심한 사랑에 의하여 서로 혈연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4절을 보면,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를 저주하시어 배로 다니고 또 종신토록 흙을 먹으리라고 하셨다. 다리로 다니지 못하고 배로 다닌다는 것은, 천사가 창조본연의 활동을 하지 못하하고 비참해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흙을 먹는다는 것은 것은 하늘로부터 쫓겨남으로 말미암아(이사야 14장 12절, 요한계시록 12장 9절), 하나님으로부터의 생명의 요소를 받지 못하고, 죄악의 세계에서 악의 요소를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Ⅴ. 죄의 뿌리

우리는 성서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여, 죄의 뿌리는 인간 시조가 과실을 따먹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뱀으로 표시된 천사와 불륜한 혈연관계를 맺은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선의 혈통을 번식하지 못하고 사탄의 악의 혈통을 번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미루어서 인간의 죄의 뿌리가 음란에 있었다는 것을 더욱 명백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죄의 뿌리가 혈연적인 관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원죄는 자자손손에게 유전되어 왔다. 그리고 죄를 벗으려고 하는 종교마다 간음을 가장 큰 죄로 규정하여 왔으며, 이것을 막기 위하여 금욕생활을 강조하여 온 것이니, 이것도 죄의 뿌리가 음란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선민이 되기 위한 속죄의 조건으로서 할례를 행하였던 것은, 죄의 뿌리가 음란에 의하여 악의 피를 받아들인 데 있었기 때문에, 타락인간의 몸으로부터 그 악의 피를 뽑는다는 조건을 세워서 성별하기 위함이었다.

수많은 영웅 열사와 국가들이 멸망하게 된 주요한 원인이 음란에 있었던 것은, 음란이란 죄의 뿌리가 항상 인간의 마음 가운데서 자기도 모르게 발동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교로써 인륜도덕을 세우고, 제반 교육을 철저히 하며, 범죄를 빚어내는 경제사회제도를 개선함으로써 다른 모든 죄악들은 이 사회로부터 불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되면서 날로 안일한 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증대되어가고 있는 음란이란 범죄만은 그 누구도 막을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사회에서 이 범죄를 발본색원 할 수 없는 한, 결코 이상세계는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재림하시는 메시아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죄의 뿌리가 어디까지나 음란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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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January 24, 2014